해커, 시스템 그리고 인생

세상사는 이야기 2012. 4. 22. 13:11 Posted by 5throck
Morning. Coffee. Yellowstone. Fog.
Morning. Coffee. Yellowstone. Fog. by Stuck in Customs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1. 여기 한 젊은이가 있다. 터질 것 같이 맑은 날에도 대학도서관 구석진 곳의 한 낡은 책장에 앉아 "Turbo C 정복"을 읽으며, 때론 그 책을 배개 삼아 잠을 청하며 언젠간 멋진 해커가 되리라는 꿈을 꾸었던 젊은이 말이다. Compiler에 미쳐서 군생활 동안 몇 권의 관련서적을 읽으며 언젠가는 나도 멋진 Compiler를 만들 것이라는, 그리고 그 Compiler를 통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모자이크"를 통해 인터넷 세상을 보면서 이 멋진 세계는 곧 HTML이라는 언어로 만들어질 것이며 S/W 패키지를 만들며 IT가 세상 가장 멋진 일임을, IT를 통해 우리의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2. 하지만, 그 젊은이가 현실세계와 만나면서 느꼈던 생각과 감정은 이상세계를 통해 추구했던 세상과 달랐다. IT는 하잖은 일이라며, 그런 일을 왜 하느냐며, 역시 일은 "시스템"과 관련된 일이 최고가 아니냐며 말하는 세상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젊은이는 혼란에 빠졌다. IT가 가장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였던 젊은이는 점점 자신의 생각이 옳은지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가졌던 신념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이게 가장 멋진 일일까?"

3. 그래서 그는 남들이 좋다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매일 구석에 처박혀 책을 읽던 습관을 버리고,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으며 남들이 괜찮다고 하는 직장을 찾기 시작했다. 그게 세상과 타협하는 일임을 알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이라는 자기 위안과 함께 세상이라는 아니 직장이라는 또 다른 사회로 진입을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IT와 관련된 일을 찾아 그나마 적성이 맞는 일을 찾았다며 마음의 위안을 삼아가며 그 나름의 재미있는 시간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4. 직장도 하나의 사회라 세상과 다르지 않았다. 거대한 IT회사조차 개발은 하찮은 일이며, 위대한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회사는 돈을 벌어야 하는 곳이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는 곳이 아니라는 대명제 아래 시키는 일을 제대로 해야만 했으며, 설사 그것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더라도 자신이 바라는 세상과 점점 멀어지더라도 "시스템"라는 매트릭스 속에서 하나의 부속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찾아 그 일을 제대로 해야만 하는 일군이 된 것이다.

5. "시스템" 속에 살게 된 젊은이는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왕 이 "시스템"에 살기로 결심했다면, 이 “시스템”에서 잘 나가야겠다고. 그는 “시스템”에서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것들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그 “시스템” 속에서 인정받기로 했다. 우수 신입사원으로 선발되었으며, 남들은 한번도 하기 어렵다는 조기 승진을 두 번씩이나 그리고 마침내 회사가 지원하는 MBA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남들의 부러움 속에, "시스템"의 최정예로 다시금 태어나게 되었다.

6. 2여 년의 프로그램을 마치고 온 뒤 그에게는 다시 큰 일이 주어졌다. 회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들이 주어지기 시작했으며, 세상에서 다른 이들이 해보지 못했던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주어졌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일을 보면서 그는 다시 혼란에 빠졌다. "시스템"에 대해 배웠는데, 시스템을 하라니. 과연 이 "시스템"이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은 무엇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지만, 중요한 일이라는 그리고 그 일을 통해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묵묵히 그 일을 했다.

7. "시스템"에 대해 배웠으니 "시스템"을 개선하거나 보완하는 일을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 젊은이는 이러한 일을 잘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게 되었다.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하게 됨에 따라 개발에 대한 생각은 점차 희미해졌지만, 지금 당장은 "시스템"에 더 관심이, 그리고 그 일을 하는 것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기에, 그는 과거의 시스템이 아닌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일을 하게 되었다.

8. 어느 날, 그 젊은이는 우연히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게 되었다. 늘 푸르기만 했던 그 젊은이는 이제 흰머리가 조금씩 난 중년이 되었으며, 세상을 바꾸어보겠다는 열정보다는 편안한 삶을 얻기 위해 세상과 타협한 매우 이질적인 자신이 그 앞에 서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이 옳았을 지에 대해 이야기 하긴 어렵지만, 무엇이 옳았는지 알았다고 하더라도 행동에 옮기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자신이 꿈꾸던 어린 시절의 모습은 아니었기에 그는 당황했으며 혼란해 빠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하고.

9.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생각해본다면 그 안에는 수 많은 길이 있다. 최초 자신이 꿈꿔왔던 길을 가는 이도 있을 것이고, 꿈꾸지는 않았지만 어떤 일을 하면서 그 안에서 자신만의 길을 발견한 이도 있을 것 같다. 인생은 누구도 두 번 살 수 없기에 부자도 가난한 이도 다 공평한 것이지만, 그 안에서 어떤 길을 가느냐는 하는 선택은 자신만의 몫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선택을 잘 하기 위해선 걷던 길을 멈추어 서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 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때도 있어야 할 것 같다.

10. 인생이라는 것을 해킹할 수 있을까? 인생을 해킹한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과연 이 시스템을 제대로 해킹해본 사람이 있을까? 라는 물음이 떠오르는 것을 보니 이제 나도 "인생"이라는 시스템을 해킹할 만한 수준이 되었다는 것일까? 아무도 모르고 알려주는 이도 없을 테지만, 이제 "인생"에 대해 해킹을 해보려고 한다. 정말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그건 나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한가지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이 답을 찾기 위해서 죽어라 노력을 할 것이며 찾으면 이를 다른 이들과 "공유"할 것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내 자신을 해커라고 믿는다면, 그것이 바로 해커의 본질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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