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패키지 개발과 관련된 일을 하고 난 뒤에는 어느 정도 유지보수와 관련된 일을 했습니다. 특히나 당시에는 Y2K가 가장 큰 화두여서 설치된 소프트웨어들에 패치를 작성해서 해당 문제를 해결해야 했는데, 이 때 처음으로 자동으로 패치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회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혼자 개발하고 사용하는 식으로 프로그래밍을 했기에 유지보수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 깨달음을 얻었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Y2K와 관련 되어서 큰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패키지는 개발하는 것 이상으로 이를 관리하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인해 시스템 엔지니어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을 했고, 또한 대학 재학 시에 다니던 과의 전산실을 운영한 경험이 있어 개발자에서 시스템 엔지니어로의 전환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회사에서의 시스템 엔지니어로 하게 된 일이 SM (System Maintenance)의 관점이 아니 SI (System Integration)의 관점에서 일을 시작했기에 과연 그 둘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하는 개인적인 관심도 크게 작용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앞서 이야기 드린 바와 같이 ERP는 기업의 핵심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소프트웨어이기에 시스템 엔지니어로서 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배울 때 상당히 고생을 했던 것 같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컴퓨터에 소프트웨어 설치하고 관리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나 하시겠지만, ERP 패키지의 경우는 설치하는 분량이 꽤 되기에 생각보다는 상당한 기술을 요합니다. ERP 패키지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겠지만, 제가 다루었던 패키지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설치 매뉴얼이 대략 300 ~ 400 페이지 정도 되었었는데, 지금은 거의 500페이자가 넘어가는 두 권 정도 책 분량이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나중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다음에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영어로 기술된 책 한권 분량의 매뉴얼을 읽는 것은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였습니다. 게다가 단순히 읽기만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시스템과 관련된 많은 복잡한 개념들을 이해해야 했기에 실제 책을 읽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머리 속으로 복잡한 개념들을 정리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소요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해당 패키지가 다양한 OS에 설치가 가능한 이유도 한 몫 했던 것 같습니다. 개별 하드웨어 벤더가 가지고 있는 OS(IBM AIX, HP HP-UX, Windows NT 등)가 각기 그만의 특성이 있었고, 설치에 사용되는 데이터베이스의 종류 또한 다양해서 Oracle, MS SQL, IBM DB2 등을 고려할 것 경우 상당한 조합이 만들어지기에 그 때 처음으로 설치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기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다른 ERP 패키지들을 다루어 볼 기회가 적어서 타 ERP 패키지들의 설치방법이 어떠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다루었던 ERP Package의 경우 설치 과정에서 요구되는 각종 입력정보들이 시스템이나 관련 데이터베이스와 상당히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있어 덕분에 시스템과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연구를 통해 많은 지식을 배우게 된 것 같습니다. 

아마 제 기억이 맞는다면 제가 처음 설치를 위해 약 한 달 정도의 시간을 투자했던 것 같은데, 여기에 서로 상이한 버전에 따른 설치과 OS에 대한 이해까지 다 고려한다면, 저 혼자 설치를 완벽하게 하는데까지 대략 3개월 이상의 시간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 부분은 단순히 설치와 관련된 부분이 그렇다는 것이고, 이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교육과정을 또한 이수해야 하는데, 해당 패키지 업체의 정식과정을 배우려면 기본적인 5주 교육에 별도의 교육을 받아야 가능했었습니다. 따라서, 제가 다루었던 ERP 패키지를 이해하고 설치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대략 최소한 6개월 정도의 교육이 필요하고 이를 능숙하게 운영을 하려면 2년 정도의 경력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소프트웨어 설치 및 운영도 상당한 기술이 된다는 저의 주장에 어느 정도 공감을 하시는 분들께서 계실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기본적인 교육을 마치고 패키지를 설치하는 실습과정이 주어졌었는데, 이 설치과정이 그 당시 가장 빠른 장비에서 3~4일 정도 걸렸던 것 같습니다. 물론, 혼자서 설치할만한 실력이 안되었기에 선배의 도움을 받아 설치를 진행했고, 그 이후에 저 혼자 설치를 시도했었는데 당시 제가 다루었던 장비가 그다지 빠르지 않은 탓도 있었겠지만 대략적으로 7~8일 정도의 시간이 요구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설치작업이라는 것이 일단 작업이 시작이 되면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장비에 매달려서 일을 지속적으로 진행을 해야 하는 관계로 자칫 집중을 할 경우 잘못된 정보를 넣기라도 하면, 설치작업을 중단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을 해야 하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해야 했기에 아이러니컬하게 상당히 지루하면서도 나름 집중을 요하는 작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 일을 하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경험 중 하나는 약 3일간 걸쳐서 거의 10대의 장비에 ERP 패키지를 설치했던 경험이었는데, 설치되는 장비가 여러 벤더(IBM, HP 등)에서 공급이 되어 다른 회사의 분들과 연합해서 일을 했던 경험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엔지니어들끼리 손발을 맞추어 가면 패키지를 설치하는 일이 마치 큰 프로그램을 다수의 프로그래머들이 공동작업을 통해 개발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 일을 3일에 걸쳐서 무사히 끝냈다는 것에 대한 시스템 엔지니어로서 자부심을 크게 가지게 되었던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전산실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웅웅” 거리는 소리가 시끄러울 만도 했을 텐데 넓은 전산실을 안방 삼아 그 소리를 음악 삼아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IT에 관련된 일을 그만큼 사랑하고 좋아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당시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을 하면서 좋았던 점 중 하나는 개발과 다르게 이미 그 일을 오랫동안 종사하셨던 분들과 같이 일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인데, 이미 해당 분야에서 오랫 동안 일을 하셨던 분들로부터 시스템 엔지니어에 대한 전망과 엔지니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배울 수 있었던 점이 저에게 좋은 지침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 일을 하게 되면서 배웠던 또 다른 좋은 경험은 개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시스템 엔지니어의 경우에는 그 어떤 일보다도 협업관계와 체계적인 지원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점이었습니다. 개발의 경우와 달리 운영의 경우에는 안정적으로 서버를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에 실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는 공식적인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네트워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일을 통해 배운 가장 중요한 시사점은 개발자와 운영자가 보는 시스템의 관점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개발자로 일을 할 때에는 다른 그 어느 것보다 프로그램 개발 및 처리속도가 가장 중요했다고 생각한 반면 시스템 엔지니어로서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속도는 약간 손해를 보더라도 얼마나 안정적인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을 했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개인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아닌 대규모 유저를 대상으로 만드는 프로그램일수록 이러한 부분이 매우 중요해지는데, 시스템 엔지니어의 업무를 배우게 된 뒤로는 개발을 함에 있어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서 일정한 속도로 유지되게 만드는 일에 더욱 더 신경을 쓰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연유로 인해 저는 좋은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운영업무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와 반대로 좋은 운영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발 과정에 참여를 해서 개발자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떠한 부분에서 고민을 하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개발과 운영을 모두 고려한 최적의 시스템을 개발하고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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